2010년 08월 19일
사랑하는 사이. 그리고 싸움.
행복한 여행을 다녀왔지만, 우리는 그 여행 중에 싸웠다. 그리고 이 싸움은 서로, 일정부분 참은 것으로 어설프게 풀렸다.
오빠는 주차하고 주차한 차를 빼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런 사고를 여러번 겪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주의를 줬었다. 내 잔소리 듣기 싫어서라도 오빠는 조심조심하기 시작했는데, 문제는 주문진항에서 벌어졌다. 오빠가 또 차를 긁은 거다. 주차하다가. 그렇게 우리는 기분이 좋지 못한 상태가 되었는데, 비도 폭풍우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오빠는 우산마저 안가져왔고, 어쨌든 주차하고나서 내 작은 양우산으로 비를 피하며 걸어내려갔다.
무단횡단을 즐겨하는 그에게 나는 항상 '횡단보도가 가까이 있다면 그쪽으로 가야한다', '신호등이 있다면 준수하는 것이 옳다'고 잔소리를 했는데, 오빠는 자꾸 내게 무단횡단을 강요하고, 나는 반대하는 상황이 3번이나 벌어진거다. 오빠 말투가 유난히 날카로웠다. 오빠는 " 자기처럼 그렇게 따지면 여기 못다녀, 언제 건널꺼야 " , " 이런 데 많이 안와봤지? ", " 그냥 좀 건너" 라는 말로 나를 자극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속이 상한 것이다.
오빠는 자기가 차를 긁은 일 때문에 내가 계속 뾰루퉁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오빠가 차를 긁은 일로 화가나 내게 그런 날카로운 말을 던진 것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아빠에게 줄 건오징어 한손만을 든 채, 비에 쫄딱 젖어서 긁힌 차에 올랐다. 오빠가 오징어회를 먹자고 했지만, 그런 기분으로는 먹고 싶지 않았고, 싫다고 했다. 오빠는 차를 빼고 주문진항을 벗어나면서 " 주문진와서 오징어안먹고 가보긴 또 처음이네 " 라는, 화난 것이 뻔한 말로 나를 공격했다.
오빠는 그랬다. 비가 오니까, 많이 오니까, 비 조금이라도 덜맞히려고 그런 거였다고. 근데 내가 횡단보도로 건너야 한다고 화내버리면 어쩌자는 거냐고. 왜 자길 죄인 취급하면서 그러는지 화난다고. 차 긁힌 거 때문에 자기만 화나고 속상한 게 아니라 내가 더 했으면 더했는데 왜 그러냐고... 나는 딱 한마디로 그에게 대응했다. " 그래도 나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
오빠는 잠시 말을 멈추고 한숨을 크게 내쉰 뒤 조금씩 말을 풀어놓았다. 자기는 그렇게 심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당신에게 그렇게 들렸다니 미안하다고. 하지만 나는 정말 아무런 감정없이 한 말인데, 자기가 그런 말들을 너무 예민하게 들은 건 아니냐며... 오빠는 또 한숨을 쉬었다. 나는 계속 훌쩍였다.
한참을 훌쩍이며 속상한 마음을 다독이던 나는 눈물이 그칠즈음 파우치를 열었다.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번져버린 아이라이너를 덜컹거리는 차안에서 고치느라 힘들었다. 나는 계속 뾰루퉁해 있었고, 오빠가 답답해하는 게 많이 보였지만 예쁘고 사랑스러운 말을 내뱉지 않았다. 오죽헌에 가기로 했지만, 비가 많이 온다는 핑계로 들르지 않았고, 순두부 집으로 갔다. 유명한 초당두부.
어릴 때 가족들끼리 주말이면 포천 쪽에 순두부를 먹으러 자주갔었다. 순두부집을 들른 건 항상 온천가던 길, 오전이었다. 스댕그릇에 투박한 보리밥이 나오고, 여러가지 나물과, 맛간장, 그리고 하얀 플라스틱 그릇에 그득 담겨나오는 순두부는 정말 맛이 좋았다. 순두부를 덜어 간장을 살짝 부어먹다가, 보리밥에 순두부를 가득 넣고 나물들도 듬뿍 넣어 비벼먹던 그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집안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에는 가보지 못한 순두부집에 대한 기억은, 추억으로 남았다.
강릉이지만, 순두부를 먹으러 간다는 생각에 들뜬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장이라도 순두부에 간장을 끼얹어 입에 가득 넣고 오물오물 고소한 맛을 느끼고 싶은 마음에 싸워서 안좋은 기분은 가라앉고 있었다. 초당두부집들이 밀집해 있는 곳에서 한 집을 골라 들어갔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메뉴가 이상했다. 보리밥은 없었고, 순두부전골과 두부전골, 그 다음이 순두부, 모두부 이랬다. 나는 너무도 당연하게 순두부를 먹자고 했다. 그런데 오빠의 반응이 이상했다. 두부전골을 먹고나서 순두부를 먹자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순두부집에 와서는 순수하게 순두부만 먹어야지, 전골같은 건 두부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없어"라는 아빠의 말을 들어온 터라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순두부를 먹겠다는 나와 두부전골을 먹자는 오빠 사이에 묘한 기운이 맴돌았다. 신경전이었다. 오빠는 내 완강한 태도에 또 한숨을 쉬곤 자긴 그럼 모두부를 먹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 기분이 상해버렸고, 그러라고 해버렸다. 너무 당연한 일인데, 모두부에는 밥이 나오지 않았고, 그는 당황하며 밥을 추가했다. 오빠가 너무 바보같았다.
밥이 보리밥이 아니라 실망했지만, 반찬들은 맛이 괜찮았다. 순두부도 너무너무 고소하고 맛있었다. 순두부를 국자로 덜어 숟갈로 간장을 끼얹어 떠먹다가, 순두부를 밥 위에 얹어 간장을 붓고, 김치를 얹어먹었다. 맛있었다. 하지만 기분은 좋지 않았다. 오빠는 내가 떠준 순두부를 잘 먹지 않았고, 반찬으로 나온 날치알쌈을 먹다가 모두부를 먹으며 맛있다는 소릴 연발했다. 나는 먹지 않는 비지를 떠먹으며 이거 싸갈 수 없냐고 아줌마에게 물어보고, 한 그릇을 더 달라고 했다 순두부는 안먹으면서. 그리곤 내 쪽으로, 내가 떠준 순두부 그릇을 놓았다. 나더러 먹으라는 뜻이었다. 결국 화가나고 말았다.
"기분 안좋아" 라고 하자, 오빠는 '왜 또..'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순두부 가게 와서 순두부 안먹고, 내가 떠준 건 몇 번 떠먹지도 않고 나한테 다시 주고. 내가 기분이 좋겠어 안 좋겠어"라고 말하며 입을 삐죽거렸다. 오빠는 웃으면서 다시 순두부를 가져가 먹었다. 알았다며. 그렇게 웃으면서 순두부를 비워내더니 내게 물었다. "모두부는 안먹어?"
모두부는 좋아하지 않았다. 모두부는 내 추억에 없었다. 김치찌개에 있는 두부도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순두부가 앞에 있는데 모두부를 먹을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은 순두부가 아닌 모두부를 시킨 오빠 때문에 모두부가 더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 모두부 별로 안좋아해"라고 말했다. 오빠는 실망한 모양이었다. " 진작 말을 하지. 그래서 그렇게 뾰루퉁한거야? "라고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순두부 먹으러 온거잖아."
오빠가 또 한숨을 쉴 것만 같아 모두부를 조금 떼어 먹었다. 생각보다 부드럽고 맛있었지만, 순두부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그릇 그득 담겨오는 따끈한 순두부랑은 다르게 겨우 세장이 그릇을 가리고 나와 밥도 안나오면서 같은 가격이라는 사실은, 정말 못마땅했다. 나는 다시 순두부를 비워내기 시작했다. 너무너무 맛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오는 길에 비지를 두덩이 싸왔다.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 나는 화도 냈고, 아직 덜 풀려서 운전하는 오빠 옆에서 잠들지 않겠다고 한 결심을 포기해버렸다. 쿨쿨잤다. 그리고 우리는 휴게소에서 맛있는 통감자와 소세지를 사먹으면서 웃었고, 그렇게 대충 풀렸다.
지금 이렇게 쓰면서도, 그 듣기싫은 오빠의 한숨이 자꾸만 떠오른다. 오빠의 한숨에는 "에휴, 내가 참아야지". "아직 어려", "대체 어쩌라고", "말을 말자말아", "이래서 같이 살기나 하겠나" 같은 정말 오빠에게서 듣기 싫은 많은 말들이 함께한다. 화나고 속이 상해버리고, 짜증도 나고, 정말 기분 나쁜 한숨이다.
# by | 2010/08/19 22:16 | 봄날의 이야기 | 트랙백 | 덧글(1)



